1. 컨페스, 플레치
컨페스, 플레치. 털어놔, 플레치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제목입니다. 갑자기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넷플릭스에 새롭게 올라왔기 때문이겠지요. 주인공 플레치 역으로 존 햄이 연기하는 데에 관심이 있어 틀었습니다. 줄거리를 보니 미술품 도난에 관련된 추리 영화라네요. 더욱이 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영화는 호화로운 타운하우스에서 시작됩니다. 별일 없는가 했더니 느닷없이 아래층에서 살해된 여인을 발견하고는 너무나 태연하게 경찰을 불러서 조사를 받는 사람, 주인공 플레치입니다. 알고 보니 플레치는 탐사 보도로 유명했던 기자 출신인데 이탈리아의 백작이 도난당한 자신의 그림 9점의 행방을 찾기 위해 고용한 사람입니다. 이탈리아로 가서 백작의 딸을 만나 자초지종을 묻기 바쁘게 둘은 연인이 되지요. 설상가상 이탈리아 백작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범인들은 백작의 몸값으로 도난당한 2000만 달러 가치의 피카소 그림을 요구합니다. 백작의 돈을 보고 결혼한 듯한 부인은 이미 백작이 죽었을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기 바쁘고, 백작을 구하려면 미국에서 거래된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피카소의 그림을 되찾아와야 합니다. 그렇게 플레치가 백작 딸의 의뢰를 받고 미국으로 넘어와 백작 딸의 지인집에 묵게 되는데 살인사건이 벌어진 것이었지요.
살인 사건을 신고한 것은 플레치였지만, 당연히 유력한 용의자가 아니겠어요? 그를 의심하여 미행하고 조사하는 경찰 콤비도 있습니다. 느긋한 선임 형사와 실수투성이이지만 열정이 가득한 신입 여자 형사 그리즈입니다. 플레치는 이 두 경찰의 감시를 피해 그림의 행방을 찾고, 다시 되찾아 이탈리아 백작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속도감 있는 추리 영화입니다.
2. 70년대 추리 소설에서 불러온 매력적인 주인공
이 영화는 1970년대에 미국 추리 소설 작가 그레고리 맥도널드 (Gragory McDonald)의 탐정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1974년에 Irwin Maurice Fletcher를 주인공으로 하는 Fletch가 출간되었습니다. 이 첫 소설로 에드가 알렌 포 상을 수상하고, 플레치를 주인공으로 하는 추리 소설을 시리즈로 발간했는데 그 두 번째 작품이 컨페스, 플레치입니다.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한 추리 영화 시리즈를 만들 수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영화화에 욕심을 냈을 법합니다. 실제로 이미 1980년대에 두 편의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네요. 그 후로도 여러 유명 배우들이 캐스팅 물망에 오르면서 영화화 시도가 자주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존 햄이 스스로 제작을 하면서 주인공 플레치 역할을 맡아 2022년에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원작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 이 영화에서 본 대로라면 조금 능글맞고 위기를 모면하는 순발력이 좋으며, 만나는 여자들마다 매력에 빠지지 않기 어려운 호남형의 기자일 것 같습니다. 세상을 돌아다니는 데에 거침이 없으며 돈에 대한 욕심도 없는지 사건 해결에 치밀해 보이지만 왠지 밉지 않네요. 이런 주인공을 2022년으로 불러오면서 주인공인 존 햄이 자신의 캐릭터를 듬뿍 담아 연기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던지는 재치 있는 유머나, 느끼한 표정을 지으면서 바람둥이 행세를 해도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호남형의 매력 같은 것들이요.
특히 원작을 현대화하면서 플레치는 자연인 존 햄이 튀어나온 듯한 복장도 보여줍니다. 레이커스 야구모자를 시도 때도 없이 쓰고, 다림질되어 있지 않은 편안한 셔츠는 바지 속으로 넣어 입는 적이 없습니다. 여러 여성에게 매력을 어필하지만 나름 순애보인 그를 대상화하지 않기는 어려웠던 것인지 상체 노출을 도맡습니다. 사실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연기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존 햄이 그걸 정말 잘 해냅니다. 특기인 것 같아요. 코미디 타이밍도 본능적으로 잘 아는 것 같고, 눈에 확 띄는 연기는 아니지만 플레치 캐릭터를 설명하는 디테일들도 잘 살려냅니다.
3. 시리즈가 될까?
이 영화를 틀어 보기 전에 미리 관객 평들을 확인했을 때에는 실망스러운 추리 영화라는 후기들이 많아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영화 마지막에 좀 급하게 사건의 실상이 밝혀지는 점은 싱겁다고 느껴집니다. 딱히 위기감이 고조되지도 않아서 서스펜스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더욱 실망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매력적인 캐릭터 극이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놀랍게도 모든 등장인물들이 나름대로 살아있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모두 연기를 잘해요. 모든 인물들이 낭비 없이 쓰이고, 모두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아무래도 플레치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를 만들 욕심으로 존 햄이 직접 제작을 하면서 찍은 작품이겠지만, 이 첫 번째 영화가 평단이나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그 계획이 실현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네요. 개인적으로는 아쉽네요. 플레치의 과거 이야기도 듣고 싶고, 이번 영화처럼 가벼운 분위기의 에피소드 말고 좀더 어둡고 무거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도 보고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