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추락의 해부라는 제목
한 남자가 흰 눈밭에 쓰러져있습니다. 남자의 자세와 붉은 피의 흔적이 마치 지금도 위에서 추락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처음에는 추락과 해부라는 생소한 단어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제목이 흥미를 끌 뿐이었지만, 영화를 본 지금은 알게 됩니다. 한 남자의 추락이라는 사건의 실체를 해부하듯 파헤쳐보는 영화입니다. 아니, 오히려 한 남자의 추락을 통해서 여러 사람의 속사정과 인생이 해부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부라는 행위는 지켜보는 것도 당하는 것도 괴롭지요.
이 영화는 프랑스의 78년생 쥐스틴 트리에라는 여성 감독의 작품입니다. 프랑스 영화스러운 막장 드라마적인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정교하고 복잡한 화법을 활용한 블랙 코미디를 잘 쓰고 감독하면서 프랑스 평단에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2007년에 다큐멘터리로 척 작품을 낸 뒤 2013년 '에이지 오브 패닉'이라는 영화로 프랑스 영화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추락의 해부 전 작품인 '시빌'은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2023년에 추락의 해부로 제76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네요. 역대 3번째 여성 황금종려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시빌'을 한번 보고 싶어 지네요.
여성 감독 작품이라는 걸 모르고 봤을 때에도 남성적이라고 느끼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엄마이자 여자, 아내인 산드라를 주인공으로 감정묘사가 중요한 이 작품을 쓰고 감독한 사람이 여성이라는 점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실제 배우자인 아서 하라리가 공동 집필했다고 하는데 영화 중간에 나오는 산드라와 남편의 부부싸움 장면이 의미심장합니다. 드라마 '결혼의 풍경'이나 영화 '결혼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면서도 확실히 이 작품의 화자는 여성이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2.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럼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영화는 프랑스 산속 외딴곳 별장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인 사만다가 학생으로 보이는 여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그저 일적인 대화일 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사만다는 와인을 마시고 있고 조금 풀어진 듯 취한 듯 횡설수설하고 있어서 뭐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화 중간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남편이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 도저히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게 되고 사만다는 불쾌감을 표시하는데 조금 긴장감이 생깁니다. 그동안 눈이 보이지 않는 초등학생 아들은 반려견 스눕과 산책을 나가고요. 그렇게 사만다와 얼굴을 비추지 않던 남편만이 남은 별장이었는데, 아들이 산책에서 돌아오니 아버지는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집 앞에 쓰러져 있습니다. 누가 밀어 떨어뜨려 죽였을까요? 아니면 자살일까요? 또는 사고를 당한 것일까요? 집에 혼자 있었던 산드라가 범인일까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프랑스 경찰은 당연하게도 사만다를 용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사만다는 유일하게 알고 지내던 뱅상이라는 변호사를 불러 고용하는데, 사만다의 증언만 듣는다면 남편이 사고인지 자살인지 모르게 밖으로 떨어졌지만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뱅상은 과연 이 말을 믿고 있을까요?
1년이 넘게 계속되는 사만다의 재판과정에서 많은 사생활이 낱낱이 해부됩니다. 사실 아들의 장애는 남편의 실수로 인한 것이었고, 그 때문에 부부는 경제적 심리적으로 곤란에 빠졌습니다. 심지어 산드라는 다른 여성들과 외도를 하기도 하고, 소설가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절망에 빠진 남편과 커리어 문제로 사건 전날 심하게 다툰 녹음파일까지 세상에 공개됩니다. 다른 목격자는 없지만 산드라는 남편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괴로워하다가 자살시도를 했었다는 증언까지 하게 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아들이 이 재판과정을 다 듣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너무나 괴로운 마음일 텐데 이 모든 부모의 치부를 접하면서도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다행인 것은 아빠와 엄마 모두 아들인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했다는 점뿐이겠네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도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사만다를 제외한 극 중 인물들처럼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모든 판단의 근거가 사만다의 증언, 남편이 녹음한 부부싸움 파일, 남편의 정신과소견, 사고였거나 살인이었거나 둘 다 가능하다는 현장 감식 전문가의 판단, 사만다가 썼던 소설의 내용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만다가 남편을 죽였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없고, 남편이 자살했을 것이라고 아무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 집을 수리하다가 그냥 허무하게 발을 헛디뎠을 수도 있죠.
재판은 결국 아들의 마지막 증언으로 결정됩니다.
3. 보는 사람마다 달라지는 실체
* 다음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으니 영화를 보시려는 분은 피해 주세요.
재판은 결국 아들이 사만다가 증언했던 것처럼 아빠가 자살 충동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언을 하면서 아버지의 자살로 결론 납니다. 엄마인 사만다는 무죄판결을 받고 아들에게 돌아가지요.
하지만 과연 아들의 증언도 진짜일까요? 아무도 실체에 접근할 수 없다면 그저 엄마가 자기 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진실을 아들이 선택한 것은 아닐까요? 아니, 아들이 증언한 아빠와의 에피소드들이 모두 진짜일 수도 있습니다. 그걸 판단하는 사람은 관객 개개인입니다. 저도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각자 이 영화를 다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더라고요. 그 지점이 재밌고 놀라웠는데 그게 바로 이 영화를 좋은 영화로 만드는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만다가 남편을 죽이고, 남편의 자살 시도 이야기도 거짓말로 지어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들을 포함해 아무도 그 사건을 보고 들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참작이 되지 못했지요. 마지막에 자기도 강아지 스눕이 아빠가 토해놓은 아스피린을 먹었다가 아파했었던 기억이 있다며, 그때는 몰랐지만 아빠가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도 다 자살 충동에 대한 이야기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증언한 아들 때문에 결정적인 무죄 근거가 되는 것뿐입니다. 저는 아들이 엄마의 그 증언을 듣고, 엄마와 함께 살 수 있으려면 자신도 위와 같은 증언을 거짓말로 지어내어야겠다고 판단을 내렸다고 봤습니다. 그러니 엄마도 아들도 그 사건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서로 알고, 결과적으로 사만다가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도 아들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무죄 판결을 받고도 아들과의 재회를 미루고, 재회를 하고 나서도 둘이 아무 말 못 하고 서로 껴안는 장면에서 암묵적인 합의의 괴로움을 느꼈습니다. 안도와 후련함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어요. 후회와 회한과 죄책감, 아빠와 남편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같은 장면을 두고도 친구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더라고요. 사고로 죽은 아빠와 온갖 추측과 가십을 견뎌야 했던 사만다의 괴로움, 모자가 함께 잘 헤쳐 나온 긴 시간의 고통이 마무리되는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지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실체에 눈을 빼앗기셨나요? 사건의 실체가 중요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실체를 알 수 없다면 무엇이 실체인지를 선택해야한다는 이야기가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