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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 : 당신들은 자격이 없다

by silverscreen 2024. 2. 18.

 

1. 메이지는 알고 있었다.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은 2012년 스콧 맥게히와 데이빗 시겔 감독의 작품입니다.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배우에 관심이 많아서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왓챠에 올라왔길래 드디어 보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인데 오나타 에이프릴이라는 아역이 연기합니다. 그녀의 엄마는 줄리안 무어가 아빠는 스티븐 쿠건이 맡았네요. 제가 관심이 있는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는 링컨 역을, 조안나 밴더햄이라는 배우는 마고 역을 맡았습니다.

 

마고는 뉴욕 으리으리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 딱 봐도 월세가 엄청날 것 같군요. 방도 참 예쁘고 부족할 게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마고네 집에 놀러 온 친구가 마고와 함께 자고 가려고 하다가, 마고와 엄마가 서로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고 속상해서 울며 가버리기도 합니다. 그 친구는 입양된 아이였거든요.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마고의 엄마는 락밴드의 보컬이고, 아빠는 아트 딜러인지 항상 전화하느라 바쁘고 해외 출장이 잦은 사람입니다. 거기에 둘은 마고를 앞에 두고도 큰 소리로 욕을 하며 싸우기가 일쑤이다가 결국 이혼 소송에 들어갑니다.

 

둘은 메이지의 양육권을 놓고 싸우는데, 메이지의 보모였던 마고와 진작 내연의 관계였던 아빠가 양육권을 얻으려고 마고와 결혼을 하자 홧김에 엄마는 아는 바텐더 링컨과 결혼을 해버립니다. 메이지는 10일마다 양쪽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적응해보려 하지만 이마저도 잘 되지 않습니다. 아빠와 엄마가 자기가 메이지를 학교에서 데리고 와야 하는 날조차도 까먹거나 바빠서 서로 마고를 보내거나 링컨을 보내 메이지를 집으로 데려옵니다. 

 

아이가 아픈 줄도 모르거나, 잠을 자야 하는 한 밤중에 아이를 느닷없이 깨워서 바쁘다며 서로의 집 앞에 놓고 가버리기도 합니다. 말로는 항상 메이지를 사랑한다 하지요. 너를 위해 원치 않는 결혼을 다시 했다고도 말합니다. 보고 싶었다 너를 위한 선물이 여기 있다 말 뿐입니다.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도 메이지는 침착해 보입니다.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고, 갑자기 마고나 링컨에게 맡겨졌을 때에도 불평하는 일이 없습니다. 언제 가버릴지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엄마 아빠가 불쑥 나타나도 언제나 달려가서 품에 안겨요. 울고 불고 떼쓰는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알게 되지요. 마고와 링컨이 메이지의 아빠 엄마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지겨워지고, 메이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스스로에게 훨씬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말입니다. 친부모가 아닌 마고와 링컨은 오히려 메이지와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바다가 보이는 시골집에 몰래 들어가 소박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메이지는 그때에서야 깔깔 웃음을 터뜨리고, 마고가 해준 핫케이크를 맛있게 먹지요.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 부모가 돈으로 사주는 으리으리한 집, 인형, 장난감, 선물들, 말 뿐인 사랑 모두 소용없다는 것을요. 아이와 행복하게 보내는 시간. 그것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2. 부모가 된다는 것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도 보아 온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은 그대로도 좋은 영화네요.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 메이지를 연기한 오나타 배우의 자연스러움입니다. 삐쩍 마른 왜소한 몸을 하고 큰 눈을 깜빡깜빡하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담담한 연기는 따로 인위적인 구석이 없이 자연스럽습니다. 너무 어른스럽지도 않고, 과하게 어리광 부리는 모습도 아닙니다만 부모의 불화와 무관심에 익숙해진 약간은 체념한 모습을 잘 연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니컬하지 않고, 아직도 엄마 아빠를 사랑하고 마고와 링컨도 사랑하는 어른들을 위로하는 존재이지요. 그렇다고 상처 입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메이지가 딱 한 번 눈물을 흘리는데 어쩜 어른들이 되어서 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링컨이 메이지의 엄마 면전에 대고 했던, "당신은 이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어"라는 대사가 절로 떠오릅니다. 

 

어찌 보면 마고와 링컨 모두 어리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돈도 없고 아이를 풍족하게 키울 수 있는 부모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메이지와 시간을 보내고, 메이지 앞에서 서로에게 사과도 하고 감사한다고 말할 줄 알지요. 자신들의 기분을 먼저 내세우지 않고 메이지를 한 번 더 생각할 줄 압니다. 그게 바로 진짜 부모가 할 일 아닐까요.

 

3.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는 이런 영화 좀 많이 찍어줬으면 해

 

오랜만에 보는 10년 전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모습이 반갑습니다. 큰 키를 하고 등을 구부정하게 말아 자신 없어 보이는 자세와 특유의 어눌한 말투가 링컨 역에 잘 어울립니다. 게다가 형제 많은 스카스가드 가족의 맏형답게 아이를 다루는 모습이 정말 자연스럽네요. 2미터 가까운 덩치로 왜소한 메이지에게 팔 그네를 태워주기도 하고, 전속력으로 달리기 경주를 하거나, 솥뚜껑 같은 손으로 방울토마토를 잘라 예쁜 계란 요리를 해주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 특히 메이지와 링컨이 참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네요. 괜히 메이지의 엄마 아빠로 나오는 줄리안 무어와 스티브 쿠건이 밉게 느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드코어 한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최신작들을 보다가 이렇게 착하고, 순한 영화에 나온 걸 보니 기쁩니다. 이런 영화에 좀 더 많이 출연해 주면 좋겠습니다.